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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奭根

奭根

1885. 11. 27 ~ 1947.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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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奭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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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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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5년 11월 27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의 두 지역 주민들이 대대적인 연합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는데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이후 안성군에서 소강상태였던 만세시위는 3월 28일부터 원곡면과 더불어 연일 각각 지역에서 벌어지던 중 4월 1일 오후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으로부터 만세시위를 제안 받았다. 이에 이병문(李丙文)·이병오(李丙五)·이상근(李相根)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원곡면 면사무소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가 고조되어 가던 중 이유석·홍창섭 등 주도자들이 양성면으로 넘어가서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주장하였고, 시위대와 함께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한편, 이날 양성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었다. 원곡면으로 이동한 양성면의 시위대는 그 지역 시위대에 합류하여 더욱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도 참여하여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도자들의 구호에 따라 시위대와 함께 일경의 주재소로 가서 돌을 던지고 건물을 불태우는 듯 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양성우편소로 건너가서 돌을 던지고, 집기 등을 모두 소각시켰다. 이후 시위대의 일부와 함께 평소 원성이 자자했던 일본인 토자토 토요테(外里與手) 상점과 다카 히데토모(隆秀知) 집을 향해 돌을 던지고, 기물과 가구 등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해산하였다. 이로부터 이틀이 지난 4월 3일 일제의 군대가 파견되어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벌어진 만세시위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색출을 진행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어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때 이른바 내란죄로 고등법원의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은 만세운동은 “소요죄를 구성할 수는 있어도 내란죄를 구성할 수는 없다”라고 판결하고, 경성지방법원을 관할 법원으로 지정하여 돌려보냈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방화죄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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