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鉐均
鉐均1855. 1. 19 ~ 1927. 12.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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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55년 1월 19일 경상북도 김천군 석현면 하원리(下院里, 현 구성면 상좌원리) 에서 태어났다. 기호 지역의 대표적 노론 유림인 송환기(宋煥箕)·송병선(宋秉璿)·송병선(宋秉珣), 그리고 남인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한 최익길(崔益吉)·육촌 이경균(李璟均)과 함께 수학하였다. 1919년 3월 곽종석(郭鍾錫)·김복한(金福漢)·김창숙(金昌淑) 등 지도층 유림이 계획한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하였다. 파리강화회의에서 한국 주권을 침탈한 일본을 규탄하고 한국 독립의 당위성과 독립 실현을 청원하는 내용의 장서를 보내려는 유림의 계획에 적극 공감하였다. 특히 파리강화회의의 내용과 전망에 비추어 한국의 독립이 국제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일제가 유림의 명의를 도용해 유림은 한국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를 제출한 사실도 계기가 되었다. 결국 장석영(張錫英)과 곽종석이 작성한 파리장서 초안에 유림 137명과 함께 연명(連名)하였고, 1919년 3월말 김창숙이 파리장서를 해외로 송달되었다. 1919년 4월 2일 성주군(星州郡)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벌어져 일본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가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 일부가 체포되면서 장서사건이 발각되었다. 4월 5일 송준필(宋浚弼), 4월 8일 장석영·이덕후(李德厚)·성대식(成大湜), 4월 12일 송회근(宋晦根) 등이 체포되었는데, 이 무렵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함께 붙잡혔다. 그러나 1919년 4월 30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제의 ‘유화정책’이 있었고, 이에 따라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한 많은 유림들 가운데 주도자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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