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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應三

應三

1892. 12. 30 ~ 196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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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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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양(平壤)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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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이완용 처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2년 12월 30일 평안남도 평양군(平壤郡) 고순화면(古順和面) 돌로도(乭老島) 상팔리(上八里)에서 주류상(酒類商) 이하선(李河善)과 어머니 김성녀(金姓女)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직업은 학교 교사였다. 1908년 이완용(李完用)과 이용구(李容九) 등을 처단하는 데 참여하였다. 1908년 11월경 이재명(李在明)은 일진회(一進會)가 이른바 ‘한일합방’을 주창하며 성명서를 공포하고,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이 병합에 관한 협약을 체결할 것을 예상하여, 이 기회에 이들을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할 동지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때 여기에 찬동하여 동참하였다. 이후 이재명·박태은(朴泰殷)·김정익(金貞益)·전태선(全泰善) 등 동지들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에 이용구가 일진회원과 함께 합방성명을 낸 것을 보고 분격하여, 거사를 거행할 것을 결정하였고, 이후 여러 번 회의에 참여하였다. 회의 결과 이재명·이동수(李東秀)·김병록(金丙錄) 등은 이완용 처단 임무를, 김정익과 조창호(趙昌鎬)는 이용구 처단 임무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이때 박태은·오복원(吳復元)과 함께 거사 실행에 필요한 자금 조달 임무를, 전태선은 거사에 사용할 권총을 서울로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재명과 함께 거사에 필요한 임무를 분담한 뒤 일체의 준비를 마치고 거사를 기다렸다. 1908년 12월 23일 오전 11시경 이완용이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명동 천주교회당에 가는 것을 알아낸 이재명은 이동수와 같이 단총과 단도를 휴대하고 교회당 문 앞에서 대기하였다. 이완용이 추도식을 끝마치고 인력거를 타고 되돌아갈 때, 이재명은 옷 속에 감추어 두었던 단도를 꺼내어 이완용의 왼쪽 어깨부위를 찔렀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동수와 조창호는 도피하였다. 이재명을 제외한 이 사건의 연루자와 혐의자는 모두 25명으로,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09년 5월 1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모살미수죄, 고살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14년 12월 이후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2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접촉하여 그 해 7월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기도 하였다. 1929년 12월에는 평양의 일본 식민통치 기관을 폭파하기 위해 폭탄 반입을 기도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만주로 재차 건너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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