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奎顯
奎顯1869. 1. 1 ~ 1961. 1.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중기의병(원용팔
- · 정운경 의병부대)
- · 후기의병(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1869년 1월 1일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현 여주시) 흥천면(興川面) 외사리(外絲里)에서 태어났다. 1095년과 1907년 사이 충청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2월 23일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을 일제의 군사기지로 만들고, 일본군의 주둔을 영구화하였다. 나아가 일제는 같은 해 6월 6일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를 앞세워 전국의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였고, 7월부터 군사경찰제를 시행하여 한국의 경찰권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국권 피탈 상황에 대응하여 1904년에서 1907년 사이 일어난 의병을 중기의병이라 한다. 1905년 7월 의병장 원용팔(元容八)이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의병부대를 일으킬 때 이에 합류하였다. 원용팔 의병부대가 해산된 후에는 의병장 정운경(鄭雲慶)이 충북 제천(堤川)에서 일으킨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1907년 6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압력으로 인해, 고종은 7월 19일 순종에게 황제의 직을 양위하였다. 또한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빼앗겼고, 군대도 해산당하였다.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악 지역의 산포수들은 이 조치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고종의 퇴위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 및 군대의 해산으로 인해 궐기한 이들을 가리켜 정미의병, 혹은 후기의병이라 부른다. 1907년 8월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이 제천 지역에서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이강년의 의병부대가 충북 단양군(丹陽郡) 단양읍(丹陽邑) 도담리(嶋潭里)에 주둔했을 때, 참모(參謀) 및 사서(司書)를 역임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911년 『취정록(就正錄)』을 지어 의병들의 활동상을 남겼으며, 『육의사찬문(六義士讚文)』을 지어 이춘영(李春永)·주용규(朱庸奎)·안승우(安承禹)·홍사구(洪思九)·서상열(徐相烈)·이범직(李範稷) 등 6명의 의병 활동을 기록으로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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