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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필

權聖弼

1879. 4. 13 ~ 196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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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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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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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79년 4월 13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덕정리(德井里)에서 출생하였다. 금마면의 만세 시위는 부평리(富平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서당을 운영하던 민영갑은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는 상황을 파악하고, 평소 교류하던 이재만에게 만세 시위를 제안하여 동의를 받았다. 민영갑과 이재만은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만세 시위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연극이 진행될 때 오후 8시경 객석에서 일어나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관객으로 온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20~30명의 관객이 호응하여 민영갑 등의 지휘에 따라 ‘독립 만세’를 외쳤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곧바로 다음 날의 제2차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연극 공연장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던 가산리 주민들과 함께 전날에 이어 4월 2일 홍성면 홍성 장터에서 또다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장날을 맞아 장터에 나왔다가 만세 시위를 목격하고, 이에 공감하여 주변의 주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민영갑·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 시위대와 함께 홍성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면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전날에 이어 또다시 만세 시위가, 그것도 많은 사람이 운집하는 장터에서 발생함에 따라 진압을 위해 경찰이 출동하였다. 이때 검거되어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서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태형 90도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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