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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範

承範

1896 ~ 192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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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承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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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자료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25세로, 1896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지, 본관, 성장 배경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중국으로 이주 후 옌지현(延吉縣) 숭례향(崇禮鄕) 도목구(倒木溝)에서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0년 도목구에서 독립군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만주에서는 독립군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북간도에 있었던 독립군 단체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신민단(新民團)·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공의단(共義團) 등은 조직을 강화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국내 진격작전을 실행하였다. 이에 일본군은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을 전게하였으나,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참패하였다. 이후 일본은 한국독립군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만주 동삼성 당국과 교섭하였다. 그러나 교섭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 조선총독부, 조선군 사령부, 관동부 사령부, 시베리아 파견군, 봉천 총영사관 등은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한국독립군을 제거한다는 원칙을 수립하였다. 1920년 10월 일본의 의뢰를 받은 중국 마적(馬賊)이 훈춘현(琿春縣)에 있던 일본 영사관 분관을 습격하여 불태운 ‘훈춘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 대해 일본은 마적단, 한국독립군,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군이 합작하여 저지른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빌미로 대규모의 병력을 간도로 출병시켰다. 그해 10월 20일부터 대대적으로 한국독립군 소탕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소바야시(磯林) 소장, 히가시(東正彦) 소장, 기무라(木村) 대좌가 지휘했던 일본군 부대에 의해 한인 마을은 불태워지고 초토화되었다. 이처럼 일본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진행되던 시기에 독립군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혔다. 활동한 독립군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1920년 11월 11일 일본군 보병 제74연대에게 도목구에서 거주하던 김우섭(金禹燮)과 함께 ‘독립군에 가입한 불령한 자’라는 명목으로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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