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九
承九1880 ~ 1920. 7.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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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8)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영동면(永同面) 계산리(稽山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40세로,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 3월부터 1913년 3월까지 영동군 영동면 및 심천면(深川面) 면장직을 맡았다. 이때 영동군 12개면 협의소장(協議所長)을 역임하였으며, 금융조합장직도 함께 맡았다. 1912년 12월 독립운동에 뜻을 세우고 만주 펑톈성(奉天省)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浦)로 이주하였다. 당시 거주지는 펑톈성 환런현(桓仁縣) 이차구(裡岔溝)이다. 1919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참여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펑톈성 류허현에서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을 해체하고 단일기관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설립 이후 군사모집, 국내외 지단과 지부 설치 등과 같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여기에 가입하고, 대한독립단 중앙총단 서기장과 지단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1919년 10월경 콴뎬현(寬甸縣)에서 중국 관헌에게 붙잡혔으나 다행히 풀려나게 되었다. 이후에도 독립투쟁을 이어나가다가, 1920년 7월 23일 일본군 수사대 제3반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다. 일본군의 수송을 거부하며 탈출을 기도하였으나, 결국 일본군이 쏜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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