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晟濬
晟濬1894. 4. 1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94년 4월 13일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대덕면(大德面) 어곡동(漁谷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정국(李貞國)이다. 이후 중국을 왕래하며 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거주지는 지린성(吉林省) 지안현(輯安縣)이다. 1923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이하 통의부), 192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통의부는 1922년 8월 대한광복군영(大韓光復軍營)·대한정의군영(大韓正義軍營)·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 등 17개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하여 결성한 조직이다. 중앙부는 콴뎬현(寬甸縣)에 있었으며, 싱징(興京)·환런(桓仁)·지안 등 총 12개 지역에 총영(總營)이 배치되었다. 통의부의 군사조직인 의용군은 1922년 8월 말경 통합된 군사조직으로 편제되어, 1개 대대 산하에 5개 중대와 유격중대, 헌병대로 구성되었다. 활동 목적은 무장 투쟁을 통한 일제 침략기관 파괴, 친일협력자 제거, 군자금 모집, 통의부 통치권 수호 등이었다. 1923년 (음)7월 통의부에 가입하고, (음)9월 환런현 이도양차(二道陽岔)에서 의용군 제3중대 서기로서 각 분대와 연락을 취하고 상황을 보고하는 송달 업무에 힘썼다. 통의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1924년 (음)9월 22일부터 (음)3월까지 환런현 흑류초안(黑柳草案)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大韓民國臨時政府 陸軍駐滿參議府, 이하 참의부) 중대본부의 서기직을 담당하게 되었다. 1925년 (음)12월 30일부터 1926년 (음)3월까지는 참의부 사령장 심용준(沈龍俊)의 명령으로 제5중대에 배속되었으며, 퉁화현(通化縣) 이도구(二道溝) 중대본부 서기를 담당하며 문서작성 및 송달 업무를 수행하였다. 참의부는 통의부의 분열을 우려하던 의용군내 제1·2·3·5 중대 500여 명이 주도하여 만든 독립운동단체였다. 군사와 민정을 관할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며, 지안현을 중심으로 무송(撫松)·안도(安圖)·유화(柳化) 등지에 영향력을 끼쳤다. 참의부 서기로 활동하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도 함께 전개하였다. 1924년 (음)4월 소대장 최재경(崔在京) 등 5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국내에 잠입하였다. 1924년 (음)5월 3일에는 평북 강계군(江界郡) 전천면(前川面) 오촌동(五村洞)에서, 같은 달 18일에는 위원군 대덕면 어곡동, 9월 11일에는 강계군 전천면 창덕동(倉德洞)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군자금 모금을 하던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7년 1월 11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6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31년 1월 22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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