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技彦
技彦1880 ~ 1922. 3.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 · 대한청년단연합회
- · 광복군사령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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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출신이다. 1922년 작성된 일제문서에 당시 나이가 42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0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이지언(李枝彦·李之彦)이다. 1919년 이후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 출신으로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대한독립청년단은 1919년 4월 조재건(趙在健)·함석은(咸錫殷)·오학수(吳學洙)·지중진(池中振)·박영우(朴永祐) 등이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안투시엔(安東縣) 구시가(舊市街) 풍순잔(豊順棧)에서 설립한 항일무장단체로, 성암(誠菴) 안병찬(安秉瓚)을 총재로 추대하였다. 이 단체의 단원으로 가입한 이후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대한독립청년단에서 모은 군자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정 등으로 사용되었다. 1919년 9월 경, 대한독립청년단의 간부들이 대거 붙잡혀 활동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안병찬(安秉瓚)이 11월 지린성(吉林省) 콴뎬현(寬甸縣)에서 김승만(金承萬)·김시점(金時漸) 등과 함께 각 지방청년단을 결합해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이후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과 연합하여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로 발전하였는데, 이 단체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광복군사령부는 임시정부가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것을 계기로 1919년 이후 만주지역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을 추진하면서 1920년 결성된 단체이다. 1922년 3월 26일 대한독립청년단 출신 광복군사령부 요원인 김병렬(金秉烈)과 함께 콴뎬현 삼차자(三岔子)에서 평북 창성경찰서 소속 정(鄭) 경부보(警部補)를 비롯한 일제 경찰 8명과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같은 해 10월 14일에서 15일까지 콴뎬현 남구지방 인민대표와 통의부 일동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콴뎬현에서 거행된 추도식에서 45인의 순국의사 중 한 명으로서 추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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