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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根永

根永

1871. 10. 10 ~ 192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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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根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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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벽성(碧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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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친일 은율군수 최병혁 처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1년 10월 10일 황해도 벽성군(碧城郡) 장곡면(壯谷面) 백운리(白雲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날쌔고 용맹해 운산장사(雲山壯士)라 불리기도 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20년 (음)3월경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군기감(軍機監)인 이명서(李明瑞)의 권유를 받아 입단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국내 의병활동을 하던 인사들이 후일을 기약하며 만주로 건너가 10여 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만든 독립군단(獨立軍團)이다. 최고지휘관인 도총재(都總裁)로 박장호(朴長浩)가 선임되었고,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奎), 총단장은 조맹선(趙孟善) 등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 지휘부 밑에 총무·재무·사법·선전 등의 부서를 둔 중앙조직을 만들고, 콴뎬(寬甸)·번시후(本溪湖)·지안(輯安)·환런(桓仁)·싱징(興京 현 신빈현[新賓縣]) 등에 지방조직을 설치하였다. 동시에 국내에도 거점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평안도·황해도 등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1920년 6월에는 이명서가 지휘하는 유격대에 가담해 압록강을 넘어 국내로 진입하였다. 총원 8명으로 구성된 유격대의 목표는 군자금 모집, 친일행위로 악명이 높은 황해도 은율군수 최병혁(崔丙赫)과 친일파인 참사 고학윤(高學倫)의 처단 등이었다. 구성읍에 도착한 유격대는 일제 군경의 눈을 피하며 이동하기 위해 두 개조로 나누고, 대장 이명서와 민양기(閔良基)가 각각 지휘하였다. 이때 민양기의 조원으로 배치되어 목적지로 이동하였다. 황해도로 들어와 다시 모든 대원들이 합류하였고, 작전지역에 도착한 이후 국내 지단의 조대헌(趙大憲)·조대흥(趙大興)·조지선(趙知善)·노성우(盧聖祐) 등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그리고 추가로 김난섭(金蘭燮)·홍원택(洪元澤)·박형진(朴炯鎭)·이현규(李鉉奎)·박능묵(朴能默) 등을 대원으로 충원하였다. 유격대는 국내 지단원들의 집을 오가며 작전 계획을 설계하면서, 일제 군경의 눈을 피해 구월산(九月山)에 진지를 구축하였다. 이로 인해 ‘구월산대’로 불리기도 하였다. 구월산대는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8월 15일을 작전 수행일로 정하고, 밤에 4개조로 편성된 대원들이 은율읍 어귀에 모였다. 최병혁과 고학윤이 모두 읍내의 같은 마을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1조 이지표(李芝杓)와 홍원택은 최병혁의 집을, 제2조 고두환(高斗煥)과 김난섭은 고학윤의 집을 동시에 습격해 처단하기로 하였다. 대장 이명서가 이끄는 제3조는 작전 도중 큰 소동이 일어나 일제 경찰들이 출동하면 그들을 제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제4조는 3개조를 모두 관망할 수 있는 곳에 배치되어, 대원들이 철수할 때 위험한 쪽을 집중 엄호해주기로 하였다. 작전 개시 신호와 함께 제1조가 집안으로 들어가 최병혁을 총살하였다. 그러나 1조보다 늦게 담을 넘은 2조는 총소리를 들은 고학윤이 달아나서 처단에 실패하였다. 이어서 총소리를 듣고 소동이 일어난 것을 인지한 주재소 경찰들이 출동하자, 3조가 총을 쏘아 저지하면서 구월산대는 모두 읍내를 빠져 나왔다. 이후 은율군 남부면(南部面) 개원리(開元里)에 있는 지단원의 집으로 이동한 구월산대는 일제의 추격을 피해 황해도의 신천(信川)·송화(松禾)·해주(海州) 등의 지역에 산재해 있던 국내 지단원들의 집으로 옮겨 다녔다. 9월 초에는 구월산쪽으로 이동하여 신천군 초리면(草里面) 도명리(道明里)에 위치한 노성우 집에서 어느 정도 머물면서 작전을 세워 귀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9월 10일 일제 경찰 80여 명이 노성우의 집을 포위하고 집중 사격하였다. 이에 맞서 구월산대는 재빨리 분산해 응전하며 포위망을 뚫고자 하였다. 죽음을 각오한 대원들의 응전으로 일제 경찰 20여 명이 죽거나 부상당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역부족인 상태에서 일제 군경의 기습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결국 대장 이명서를 포함해 대원 주의환(朱義煥)·이지표·원사현(元士賢)·박기수(朴基洙) 등과 함께 교전하다가 사망하였다. 또한 나머지 대원들도 큰 부상을 입고 붙잡혀 송화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이후 민양기는 사형, 고두환은 무기징역을 받는 등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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