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棟欽
棟欽1881. 3. 27 ~ 1967. 9.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회
- · 유림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8년 광복회의 독립운동자금 모집 사건
- · 1925년 제2차 유림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1년 3월 2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토계동(土溪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자는 인길(人吉), 호는 이고(貳顧), 이명은 이인길(李仁吉)이다. 조부는 1910년 10월 단식 순국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이고, 부친은 기암(起岩) 이중업(李中業), 어머니는 김락(金洛), 동생은 반산(泮汕) 이종흠(李棕欽)이다. 1918년 2월 광복회(光復會)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을 만나 광복회 회원이 되기로 맹약하였다. 그해 4월 광복회의 군자금 모집을 위해 경북 봉화군(奉化郡) 법전면(法田面) 풍정리(楓井里)의 부호 이정필(李廷弼)에게 광복회 명의로 서신을 보내 군자금 제공을 요구하였다. 이 일로 면장 이명호(李明鎬)와 함께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18년 1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5년 김창숙(金昌淑)이 주도하였던 제2차 유림단의거(第二次儒林團義擧)에 동생 이종흠과 함께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10월 하순 동생 이종흠과 함께 안동지역의 연락책 정수기(鄭守基)로부터 권총 1자루를 교부받고, 12월 하순 대구에서 김창숙을 만나 군자금 모집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후 12월 말부터 다음해 1926년 3월경까지 2차례에 걸쳐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 일로 1926년 5월 10일 이종흠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예심에 회부되어 고초를 겪었다. 1927년 1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면소로 풀려났다. 1927년 5월 14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김창숙이 체포되고 이후 국내로 압송되어 오자 일제는 경북지역에서 전개된 유림단의 군자금 모집 사건을 확대 조사하면서 관계자들을 재차 체포하였다. 이때 연루되어 그해 7월 재차 붙잡혔으나, 1927년 7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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