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東煥
東煥1901. 1. 9 ~ 1982. 6.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중앙고등보통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6.10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1월 9일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산외면(山外面) 평사리(平沙里)에서 이승의(李丞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향산(香山)이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1월 중앙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 중 서양사 수업시간에 미국 독립에 대한 강의를 받던 중 교사와 학생을 향해 한국의 장래와 독립에 관해 열변을 토하였다.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사망하자, 5월 16일 박용규(朴龍圭)·곽재형(郭載炯)·김재문(金載文)·황정환(黃廷煥) 등과 만나 거사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이 통동(通洞,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인동)의 하숙집에서 모였기 때문에 ‘통동계(通洞系)’라고 칭한다. 통동계 동료들과 함께 서울의 각급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지 규합에 나섰다. 이때 지역을 둘로 구분하여 제일고보와 동쪽 방면의 학교를 맡았다. 1주일 만에 5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였고, 1926년 5월 23일 축구시합을 위장해 5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이때 투쟁방법에 대해 논의할 때,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일제의 기관과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충정로(忠正路) 일대를 폭파하자는 투쟁방법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모인 학생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해산하였다. 5월 24~25일 이틀 동안 통동계 학생 5명과 함께 회의를 거듭해 건물 폭파와 같은 과격한 투쟁 방법은 실현 가능성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안으로 순종 장례일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5월 26일부터 거사에 필요한 격문을 작성하고 인쇄 작업에 들어갔다. 거사에 필요한 자금은 고향에서 보내오는 생활비 일부와 외투 및 책 등을 팔아 충당하기로 하였다. 5월 28일 김재문과 함께 인쇄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였고, 5월 29일 통동 김재문의 하숙집에서 공동으로 격문을 작성하였다. 작성된 격문은 5월 31일까지 박용규의 하숙집에서 5,000여 장 정도가 인쇄되었다. 이 격문을 1인당 1,000장씩 나누어 거사에 참가하기로 한 학생들에게 배포하는 한편, 6월 8일과 9일 시내 각 학교와 전국 주요 지방학교에 격문을 발송하면서 장례 당일 거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이때 중앙고등보통학교 5학년 동급생 최재민(崔載民)을 만나 격문 400장을 주어 거사 당일에 살포하도록 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오후 2시경 동대문 밖 동묘(東廟) 앞에서 박용규·황정환 등과 함께 격문 700여 장을 뿌리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거사 당일 체포를 피하였으나, 6월 19일 중앙고보생 18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법정에서 재판관을 향해 “조선이 당장에 독립은 안 된다 하더라도 우리 민족에게 민족정신을 앙양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할 목적으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였다. 1926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일제 검사가 항소하여 1927년 4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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