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同介
同介1910. 4. 15 ~ 1955. 4.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언양소년단(일명 언양소년회)
- · 언양소년소녀연맹
- · 울산독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5)
관련 사건
- · 언양소년회 불온문서 사건
- · 울산독서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5) 1910년 4월 15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언양면(彦陽面) 서부리(西部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 한 이동계(李東桂)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5년 4월 경남의 언양소년단(彦陽少年團 일명 언양소년회)에 가입하였고, 1926년 언양소년단이 언양소년소녀연맹으로 확대되었을 때 조직의 간부를 맡아 회원들을 지도하였다. 언양소년단은 언양면의 7~18세 미만의 청소년을 회원으로 하고, 소년운동을 통해 소년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단체이다. 1923년 10월 6일 결성되었고, 1925년 언양소년소녀연합회, 1926년 5월 30일 언양소년소녀연맹으로 확대되었다. 이때 집행위원과 상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7월 무렵 언양 청년회관에서 열린 총회에서 단원 20여 명에게 “조선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독립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들 소년단원은 단결하여 조선독립사상을 선전해야 한다. 일본인은 조선인을 압박하고 정부 역시 차별대우를 하니 일본인의 상품을 사지 말고 일본인을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조선총독부의 차별대우에 맞서 일본인 상품을 불매하자는 취지였다. 그 해 12월 11일 단원인 언양보통학교 6학년 학생 김동하(金東河)가 “조선 소년들아! 일본인을 타도하여 조선을 회복하자! 조선독립만세!”라는 격문을 써 언양주재소 앞 게시판에 부착했다. 일명 ‘언양소년회 불온문서 사건’으로 이것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조사 과정 중 언양소년단의 정체와 이동개의 강연 활동이 밝혀지면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9년 3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이 확정되어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9년 12월 15일 만기 출옥으로 풀려났다. 풀려날 당시 고향에 도착하자 언양소년회 회원과 동지 100여 명이 환영을 나와 ‘소년회가’를 부르며 소년회관까지 행진하였다. 1931년 6월 양산읍내 분규사건에 대하여 이영건(李永健)에게 격려 편지를 보낸 일로 구류 15일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1932년 5월 이른바 언양격문사건(彦陽檄文事件) 혐의로 울산경찰서에 붙잡혔다가 같은 달 14일 무혐의로 풀려났다. 1932년 11월 동아일보 양산지국 기자가 되었다. 1935년 1월 6일 비밀결사 울산독서회(蔚山讀書會 일명 울산적색독서회(蔚山赤色讀書會))에 참가하여 활동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른바 울산독서회 사건은 울산적색농업조합과 관련되어 울산·언양·경주·부산 등지에서 박상선(朴相善)·이봉술(李奉述)·김임출(金壬出) 등 다수의 청년들이 체포되었던 사건이다. 1936년 6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예심계에서 예심을 마치고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7년 3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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