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敦九
敦九1888. 7. 2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암살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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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1888년 7월 21일 서울 종로(鐘路) 내자동(內資洞)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서울 팔판동(八判洞)과 낙원동(樂園洞)에 거주하였다. 양반 가문 출신으로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1월 태극학회(太極學會)에서 운영하던 태극학교에 들어갔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약 1년간 수학하였으며, 귀국 후 순사로 복무하였다. 1920년 (음)5월 중국 지린(吉林)의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에서 파견된 김동순(金東淳)과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 출신 김상옥(金相玉)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암살단(暗殺團)에 가입하였다. 암살단은 만주에서 폭탄과 권총을 반입하여 일제 관공서 파괴, 일제 요인 및 친일파의 처단, 군자금 모집 등을 목적으로 서울에서 조직된 의열투쟁 비밀결사였다. 가입 당시 암살단의 수금계(收金係)를 맡았다. 이후 암살단 소속으로 매일 북한산에 들어가 사격훈련을 실시하였다. 1920년 6월부터 「암살단취의서」, 한국인 형사·순사의 암살에 대한 「경고문」, 중추원 참의 및 한국인 고등관 대상의 「통고문」 등을 제작, 인쇄하였다. 그 해 7월 중순 이후 암살단은 한우석(韓禹錫)의 ‘광복단 결사대’와 결합하여 동맹투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미국 의원단 내한을 계기로 조선총독 및 정무총감의 암살 등을 계획하였다. 수차례 비밀회의를 거듭한 끝에 미국 의원단이 도착하는 8월 24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미국 의원단이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할 때 영접하기 위해 나올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을 암살하기로 계획하였다. 동시에 「암살단취의서」 등을 뿌려서 군중을 선동하고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기로 하였다. 이어 거사용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금 모집에 나섰다. 8월 4일 오전 8시경 김상옥·김동순과 함께 권총을 소지하고 서울 청진동(淸進洞) 소재 변호사 박승빈(朴勝彬)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일부를 중국 지린(吉林)의 최우송(崔友松)에게 보냈다. 8월 21일 밤 만주에서 미국 의원단의 서울 방문을 계기로 폭탄거사를 감행할 임무를 띠고 잠입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대원 3명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서울의 경계가 삼엄해졌고, 일제는 서울의 요시찰인 약 1,000명에 대한 예비검속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8월 24일 새벽 김상옥의 집이 급습당하여 한우석이 체포되고 권총과 탄환, 관련문서 등을 압수당했다. 김상옥만 겨우 탈출하였고, 같은 날 오전 11시경 윤기중 등 4명의 암살단원도 체포되었다. 이후 김상옥·김동순의 해외 도피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6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6년 1월 징역 4년 8월로 감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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