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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德七

德七

1915 ~ 1936.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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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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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천그룹 재건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경북 김천지역 조선공산당 재건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자료의 한계로 출생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36년 당시 22세이므로 1915년생으로 추정된다. 김천(金泉)에서 활동할 당시 점원(店員)으로 일하고 있었다. 1933년 8월 1일 경상북도 김천 욱정(旭町, 현 자산동)의 감천(甘川) 제방에서 김종택(金鍾宅)을 책임자로 하는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독서회는 1932년 2월경 회원들이 검거되면서 와해되었다가 1933년 4월 재결성된 조선공산당 김천그룹 재건협의회(이하 김천그룹)와 연계된 조직으로, ‘조선을 독립시킬 목적’으로 마르크스 이론을 공부하고 노동자들의 쟁의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독서회를 통해 김천그룹과 함께 지역에서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을 하였다. 김천그룹은 1935년 초 서울에서 결성된 전조선적색노동조합준비위원회와 연계하여 장기적으로 전국 조직 결성을 준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35년 5월부터 주도자였던 이병일(李秉一)을 시작으로 관련자들이 대거 검거되고 말았다. 검거된 연인원이 300여 명, 검찰에 송치된 인원이 62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건이었다. 이 무렵 김천그룹 회원들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았으며, 1935년 12월 17일 동지 61명과 함께 대구지방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그 해 12월 26일에 예심에 회부되었다. 1936년 2월 초부터 급성 폐병을 앓다가 2월 15일 보석 출감하였다. 1936년 3월 23일 김천 남산정(南山町)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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