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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達榮

達榮

1911. 10. 15 ~ 1950.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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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達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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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漆谷)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칠곡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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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적색농민조합 건설준비협의회
  • · 성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911년 10월 15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왜관면(倭館面) 매원리(梅院里)에서 아버지 이상만(李相萬)과 어머니 부림 홍씨(缶林 洪氏) 사이에서 3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현수(賢秀), 호는 송재(松齊)이다. 오천(烏川) 정씨(鄭氏)와 결혼하여 2남 4녀를 두었다. 왜관공립보통학교(倭館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 이하 대구고보)에 재학하였다. 1931년 대구고보 재학 중 한국인 학생을 멸시하며 민족 차별을 일삼는 일본인 교장과 교사를 배척하는 동맹휴학에 참여하였다. 대구고보를 졸업한 후 귀향하여 인쇄업에 종사하였다. 1936년 6월 칠곡에서 최소복(崔小福)·정칠성(鄭七星)·이영석(李寧錫)이 주도한 항일 비밀결사에 가입하였다. 비밀결사는 적색농민조합의 조직과 조선공산당 재건, 궁극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목표로 하였다. 일본에서 박용칠(朴容七)·장재성(張載性) 등이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된 반파시즘 인민전선전술을 수용하여 결성한 재동경조선유학생연구회(在東京朝鮮留學生硏究會) 등과 연계를 가지며 활동하였다. 항일 비밀결사는 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하기 위해 우선 농민의 권익 옹호를 실현하면서 농민의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제의 관제농민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농촌진흥조합(農村振興組合)과 조합이 운영하는 야학을 활용하여 농민을 계몽시키고 동지로의 규합을 꾀하였다. 1937년 일제가 일으킨 중일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일제의 패전을 위해 후방을 교란시키는 반전반제운동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한국인의 생활을 사수하고 독립운동을 펼친다는 목표를 세우고 활동하였다. 비밀결사의 목적에 따라 이두석(李斗錫)·박형동(朴亨東)·이석(李錫) 등과 함께 비밀결사 산하에 설치된 독서회 성진회(惺進會)에서 활동하였다. 성진회는 한국 역사·어학·문학·사상 관련 학습을 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웠다. 또한 사회운동과 혁명이론을 익히기 위해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발표와 토론을 통해 계급의식도 심화시켰다. 회원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성진회를 일종의 친목계처럼 위장하여 운영하였고, 회합도 대구의 여관이나 성주·합천·울산 등지의 사찰에서 개최하면서 문화유적 탐방처럼 위장하였다. 1938년 2월 무렵 비밀결사가 발각되어 왜관경찰서에 붙잡혀 대구경찰서로 이송된 뒤,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송치되어 1년 9개월여 동안 미결수로 옥고를 겪었다. 1939년 11월 4일 기소유예를 받고 김천소년형무소에서 풀려났다. 풀려난 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모색하다가 귀국하였다. 1945년 8월 광복 후 경북 칠곡 석적면(石積面) 면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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