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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得雨

得雨

1925. 5. 12 ~ 201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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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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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박천(博川)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박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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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제3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5년 5월 12일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 동남면(東南面) 당상동(堂上洞)에서 태어났다. 1944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국내진공작전 등을 준비하면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9월 중국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휘하에 광복군이 창설되었다. 광복군은 지대를 편성하고 그 외에 모병기구로서 징모처를 두었는데, 임시정부 군무부가 광복군 병력모집을 위해 1942년에 이르기까지 설치한 것이었다. 창설 초기 징모처는 제1분처, 제2분처, 제3분처, 제5분처, 제6분처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제6분처는 김학규(金學奎)를 주임으로 하여 오광심(吳光心)·신송식(申松植)·서파(徐波) 등 8명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푸양은 일본군 점령지역과 근접한 지역이며, 중국군 제10전구 사령부와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의 후신) 제10분교와 가까운 곳이었다. 징모 제6분처는 이 지역을 근거로 쉬저우(徐州)·구이더(歸德)·난징(南京)·칭다오(靑島)·톈진(天津) 등지에 공작원을 파견하였다. 지속적인 대일공작과 초모 활동을 통해 학도병이나 한인들을 포섭하여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징모 제6분처의 인원이 크게 증가하자 광복군 총사령부는 제6분처를 광복군 제3지대로 개편하였다. 김학규가 지대장으로 선임되었고,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었다. 한편 1945년 광복군 제3지대는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와도 합작하여 한미공동첩보작전인,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훈련을 실시하는 등 초모·선전·첩보·훈련 등의 영역에서 광복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12월 푸양에서 당시 징모 제6분처였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45년 8월 국내정진공작대 파괴반으로 임명받았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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