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喆林
喆林1901. 1. 29 ~ 1959. 6.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장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901년 1월 29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팔탄면(八灘面) 덕우리(德隅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장곡면(長谷面) 화계리(花溪里)에 이주해 거주하면서 농사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7~8일 장곡면 화계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홍성 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장곡면의 만세운동은 김동하(金東河)가 주도하였다. 4월 7일 김동하는 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한상철(韓相喆)·이문재(李文載) 등과 함께 화계리 주민들을 이끌고 앞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불렀고, 이어서 도산리(道山里)에 위치한 장곡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오후 8시경 결성리(結城里)·가송리(佳松里) 등지에서 집결한 주민 약 300명과 함께 면사무소 뒤에 있는 응봉산(鷹峰山)에 올랐다. 한상철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면민들과 함께 북을 치며 독립만세를 부르고 다시 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김동하·이문재 등이 앞장서서 면사무소를 공격하자. 면민들과 함께 돌과 몽둥이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굴뚝을 쓰러뜨리며 유리창을 깨뜨렸다. 이어 면사무소의 각종 기물과 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4월 8일 오후 11시경 면민과 학생 60여 명이 다시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독립만세를 부를 때, 이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은 전날의 격렬한 만세시위로 인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었으므로 시위대를 강력하게 제지하였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몽둥이 등의 무기로 대항하며 또다시 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다급해진 일제 군경은 시위를 향해 총격을 가하는 등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다수의 참가자 붙잡혔다. 당시 무사히 탈출하였으나, 이후 이어진 일제의 검속 과정에서 4월 24일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과 벌금 30원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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