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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明魯

明

187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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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明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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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장연(長淵)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장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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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장연군 후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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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후남면(候南面) 남호리(南湖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3세로,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1일 장연군 후남면 남호리 장터 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平壤) 등 7개 도시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데, 장연군을 비롯한 황해도 서부지역에서는 3월 11일부터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4월 11일 오전 11시 후남면 도지리(道知里) 남창(南倉) 장날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개신교인들이 중심이 된 200여 명의 시위대 일원으로 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태극기를 앞세운 시위대의 만세 외침을 보고, 장터에 나온 사람들이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향하였는데, 시위대 중 일부는 면사무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면서기를 구타하였다. 시위가 확산되자, 장연경찰서에서는 증원 병력을 파견해서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일제 군경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서 항소하였지만. 1919년 7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그러자 “경술국치는 원래 한국인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민족자결주의의 대세에 의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행위는 한국 민족된 자로 당연하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상고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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