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李東煜1891. 12. 11 ~ 19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의주군 비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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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12월 11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비현면(枇峴面) 체마동(替馬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목면상(木棉商)을 하며 상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4일 평북 의주군 비현시장(枇峴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의주의 만세운동은 민족대표 중 하나인 유여대(劉如大)가 의주의 기독교 청년 20명과 함께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의주읍 서부교회에는 양실학교 학생과 교사를 비롯하여, 기독교인 1,000여 명이 모여 예배를 올리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2일에는 기독교도와 천도교도가 모여 다시금 만세운동을 벌였으며, 고종의 장례 당일이던 3월 3일에도 의주읍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의주군 비현면 체마동에서도 3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마을 곳곳을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3월 4일에는 비현면 체마동교회 목사인 최명준(崔明俊)을 필두로, 기독교도와 천도교도가 중심이 된 만세운동이 비현면 비현시장(枇峴市場) 장날을 맞아 벌어졌다. 최명준은 체마동교회 신도와 함께 3월 1일부터 의주에서 배포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비현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이 모여들자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고, 만세를 부르며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평소 파리강화회의에서 결정된 민족자결주의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기에 장날에 나와 있다가 만세 소리를 듣고 참가하여 시위대와 함께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비폭력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시위 소식을 들은 일제 헌병이 즉각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으며, 이때 주도자 11명과 함께 붙잡혀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만국 평화 회의의 공의(公義)와 정도(正道)”를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1919년 5월 1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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