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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介

東介

1895. 5. 19 ~ 197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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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東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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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昌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창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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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7)

관련 사건

  • · 1919년 창원군 웅천면 읍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7) 1895년 5월 19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 대장리(大帳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원우(李洹雨)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웅천면(熊川面) 읍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웅천면 읍내 시위의 계기는 군내 각지에 일어난 만세시위의 영향을 받은 인사들이 거사를 결의한 것이었다. 특히 읍내 사립 계광학교(啓光學校) 직원이었던 주기용(朱基溶)을 중심으로 정운조(鄭雲朝)·문석주(文碩柱)·김병화(金炳化) 등이 주도하였는데, 이에 함께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거사일은 4월 3일로 잡았고, 마천리(馬川里)에 있는 면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시작하여 웅천 읍내 중심가로 행진해 나갈 계획이었다. 거사 준비는 은밀하게 이루어져서 장소를 옮겨가며 군중 동원을 위한 동리별 연락과 태극기 제작 등을 하였다. 여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분담된 역할을 맡았다. 같이 거사 준비를 하던 정운조와 문석주가 도중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는 상황도 있었으나 계획이 누설되지 않아 거사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만세시위는 4월 3일 오전 11시경부터 계획대로 웅천면 면사무소 앞에서 시작되었다. 주도자들과 함께 면사무소 앞으로 나갔을 때 사전 연락 등으로 이미 500~60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준비한 태극기를 주도자들과 함께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를 부르며 웅천의 읍내 중심가로 행진하였다. 연도의 수많은 군중이 합세하면서 시위대는 짧은 시간에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가 웅천 읍내 전역으로 확산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군 헌병대가 본격적인 시위 진압에 나섰고, 진해의 헌병대와 경찰들이 급파되어 가세하였다. 일제 군경은 총검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진압을 전개하였고, 동시에 주모자 색출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체포 작전도 감행하여 수십 명을 연행하였다.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27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부산감옥 마산분감서 옥고를 겪고, 같은 해 11월 27일 풀려났다. 이후 항일 활동을 지속하였는데, 1944년 일제의 전시 동원에 불응하여 8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검사분국에서 국가총동원법 위반으로 벌금형 100원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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