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能學
能學184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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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경상북도 선산군(善山郡) 산동면(山東面) 송산리(松山里, 현 구미시 산동면 송산리)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79세인 것으로 보아 1840년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긍와(肯窩)이며,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이다. 김흥락은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후손으로 이황(李滉)·이상정(李象靖)·유치명(柳致明)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유학자였다. 김흥락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19년 3월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작성한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파리장서 운동’ 또는 ‘제1차 유림단(儒林團) 의거’로 불리는 이 사건은 유림이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 청원 문서를 작성 후 강화회의 의장에게 보내려고 한 항일 독립운동이었다.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과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기호유림을 위주로 추진되었는데, 서명자 137명 중 유필영(柳必永)과 함께 79세로 최고령자였다. 파리장서의 전달은 장서 작성에도 참여한 김창숙(金昌淑)이 맡아 상하이(上海)로 가져갔으며, 이후 손진형(孫晉衡)·신규식(申圭植)·신채호(申采浩) 등과 논의한 끝에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우편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파리장서는 한문본 3,000부와 영문본으로 2,000부를 인쇄하여 각국 대표와 공사관으로 발송되었으며, 국내 향교에도 한문본이 전달되었다. 파리장서 운동은 서명자 중 한 사람인 송회근(宋晦根)이 같은 해 4월 2일 경북 성주(星州)의 만세운동으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발각되었다. 일제는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 모두를 체포하였고, 이때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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