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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南彩

南彩

1899. 5. 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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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南彩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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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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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2)

관련 사건

  • · 1919년 광주군 서방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2) 1899년 5월 6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서방면(瑞坊面) 중흥리(中興里, 현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전남 광주군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에 거주하면서, 광주 시내에 위치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3월 10일 광주군 광주 읍내에서 발생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 등 선언서류와 격문을 배포하였다. 광주 만세운동은 기독교의 김강(金剛)·남궁혁(南宮爀)을 비롯하여, 일본 유학생 정광호(鄭光鎬),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丙浚),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특히 최병준은 숭일학교 학생들을 사전에 조직하여 인쇄한 독립선언서·태극기·경고문 등을 사전에 배부하여 거사 당일 현장에서 나누어 줄 것을 독려하였다. 이때 최병준으로부터 독립선언서·경고문·독립가를 전달 받아 간직하고 있었다. 3월 10일 오후 2시 30분, 사전에 약속한 시간이 되자 장이 열리던 부동교(不動橋) 아래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최병준으로부터 전달받은 독립선언서 등 수십 장을 장날을 맞아 방문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군중이 이에 찬동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하자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앞장서 행진하였다. 이윽고 양림동(楊林洞)·북문(北門)·지산면(芝山面) 방면에서 각기 출발한 시위대와 시내에서 합류하여 우체국 앞으로 움직이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오후 5시경, 일제 기마헌병대가 총칼로 공격하며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는데 이때 붙잡혔다. 이후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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