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南鍾
南鍾1893. 7. 29 ~ 1982. 4.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홍주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3년 7월 29일 충청남도 홍주군(洪州郡, 현 홍성군) 금마면(金馬面) 화양리(華陽里)에서 출생했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이남종(李南種)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에서는 부평리(富平里)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을 중심으로 1919년 4월 1일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민영갑은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평소 시국에 대한 생각이 비슷했던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협의하여 금마면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4월 1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된 것을 만세운동의 좋은 기회로 여겨 이를 계획하였다. 4월 1일 오후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연극 공연에 관객으로 입장하여 공연을 관람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할 적절한 기회를 탐색하였다. 이들은 아직 연극공연이 끝나지 않은 오후 8시경 일제히 객석에서 일어나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공연장에 입장한 주민들을 향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와 같은 호소에 공감한 20~30여 명의 주민들이 곧바로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였다. 이로 인해 연극 공연은 중단되고, 공연장은 독립을 위한 만세시위의 현장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이날의 시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만세시위 발생 소식을 접하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고 말았다. 이후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체포당하였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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