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南琦
南琦1898 ~ 1919. 3. 30
포상 정보
- · 애국장(2000)
관련 사건
- · 1919년 파주군 조리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0)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일자와 출신지역은 알 수 없다. 재한선교사 보고 자료에 22세로 기록되어 있어 189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는 한문이 다른 이남기(李南基)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28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광탄면(廣炭面) 면사무소 앞에서 시작한 만세시위는 조리면(條里面) 봉일천(奉日川)시장으로 이동해 약 2,000~3,000명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경찰의 탄압에 큰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하였다. 파주 지역에서는 1919년 3월 10일 구세군에서 활동한 임명애(林明愛)의 주도로 교하공립보통학교(交河公立普通學校)에서 최초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이래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집중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기간 동안 파주군의 각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일제 경찰과 헌병대의 발포와 폭력에 의해 곳곳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매우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광탄면에서는 이기하(李起河)·조무쇠(曺茂釗)·이인옥(李仁玉) 등의 주도로 3월 27일부터 3월 28일까지 이틀에 걸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3월 28일의 만세시위는 인근의 조리면(條里面)과 고양군(高陽郡)의 일부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7일 광탄면사무소 앞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는 일제 경찰이나 군대와 특별한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으나, 다음날인 28일의 제2차 만세시위는 상당히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8일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광탄면사무소 앞에서의 만세시위를 마무리한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장날이었던 이웃한 조리면 봉일천리의 봉일천장터로 행진하였다. 장터에 나온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만세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크게 고무된 만세시위대는 조리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면장과 면서기 등을 끌어내 만세시위에 동참시키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일제는 인근의 군대와 경찰을 급파하여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며 무력 진압을 전개하였다. 이 때문에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광탄면의 박원선(朴元善)과 정시화(鄭時和), 조리면의 김남산(金南山) 등이 총탄에 죽거나 큰 부상을 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의 곤봉에 심한 부상을 당하여 3월 29일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으나, 치료받다가 하루 뒤인 1919년 3월 30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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