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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洛鉉

鉉

1860. 7. 9 ~ 191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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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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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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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1919년 합천군 삼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60년 7월 9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삼가면(三嘉面) 문송리(文松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3일 삼가면 삼가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희생되었다. 합천군은 경남에서 가장 많은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났던 지역이다. 3월 23일 삼가시장에서 펼쳐진 만세시위에는 13,000명의 대규모 군중이 집결하였다. 삼가시장 만세시위는 합천군내 최초 만세운동인 3월 18일 삼가 읍내 만세시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3월 18일 오후 1시 경부터 300~400명의 군중이 시장을 누비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출동한 합천경찰서 경찰들과 진압에 가세한 일본인 재향 군인들에 의해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만세시위로 정인표(鄭演彪)·공민호(孔敏鎬)·정각규(鄭恪圭) 등 주도자들이 체포되었기 때문에, 붙잡히지 않은 나머지 주도자들과 함께 다음 삼가시장 장날인 3월 23일 다시 궐기하기로 뜻을 모았다. 3월 23일 삼가면에는 합천군 전역과 인근 의령군(宜寧郡) 주민까지 가세하여 1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삼가면 읍내에 위치한 객사(客舍)의 정금당(淨襟堂)에서 평화롭게 만세시위가 시작되고, 이어서 정방철(鄭邦哲)·김전의(金典醫)·김달희(金達熙)·임종봉(林鍾鳳) 등 주도자들이 차례로 나와 연설하였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수탈·차별을 규탄하며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였고, 3월 18일 만세시위에서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도 요구하였다. 이에 운집한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만세시위 시작 이후 일제 군경이 출동하였지만, 집회가 진행됨에 따라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하자는 열기는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나 객사 정금당 계단 위에서 연설하던 임종봉이 일제 헌병의 총탄을 맞으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임종봉이 총탄을 맞고 계단 밑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목격한 시위대는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이어진 일제 군경의 발포로 만세시위는 격렬해졌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분노한 군중을 이끌어 발포한 일제 군경을 쫓아 읍내 주재소와 면사무소·우편소 등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일제 군경은 곤봉·낫·호미 등으로 무장한 사람들과 만세시위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하였다. 이때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제 군경의 총격에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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