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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根洙

根洙

1879. 4. 25 ~ 195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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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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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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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9년 4월 2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에서 태어났다. 당시 대서업(代書業)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에서 발생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1일 정오에 내가천리(內加川里)에서 오늘 밤 만세시위가 있으니 함께 참여할 것을 주민들에게 통보하며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이미 주민 일부는 그 전에 외가천리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양성면으로 갈 터이니 주민들은 모두 모이라고 하였다. 외가천리로 돌아와서 주민들을 권고해 양성으로 가다가 성은고개에서 만세시위를 하러 가던 원성삼(元性三)·안문보(安文甫) 일행과 합류하였다. 이처럼 원곡면에서는 4월 1일 저녁 원곡면사무소로의 집결 지시가 내려지자, 면내의 주민 약 1,000여 명이 면사무소로 집결하거나 양성으로 향하는 도중에 합류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성은고개에 이르자, 일어나서 군중에게 “한국은 독립국이 될 것이므로 일본의 정책을 시행하는 관청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모두 같이 원곡면, 양성면 내의 순사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파괴하자”고 선동하였으며, “일본인을 양성면 내에 거주하게 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 내지인을 양성에서 쫓아내자”며 행동을 독려했을 뿐만 아니라, “제군은 돌 또는 몽둥이를 지참하여 활동하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고무적인 연설을 하였다. 이에 따라 4월 1일 밤 10시 양성면 동항리(東恒里) 소재 양성경찰관주재소 앞에서 군중 약 100여 명과 함께 만세를 부르면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등 투쟁을 전개하자, 주재소 안에 있던 순사보가 도망쳐 나왔다. 이를 목격하고는 사무소 및 순사기숙사 각 1동 및 서류, 기물 및 가구 등을 소각하도록 지시하였다. 최은식이 석유를 가지고 와서 불타는 곳에 끼얹을 때, 솔잎에 불을 붙여 주재소 부엌에 가지고 가서 방화를 하였다. 주재소를 불태운 후 양성우편소로 이동하여 우편소를 향해 돌을 던졌으며, 통신 차단을 위해 전신주를 불태워 넘어트렸다. 그리고 우편소 사무실 안에서 의자, 탁자 등을 앞마당에 끄집어내어 모두 태워버렸다. 또한 몽둥이를 들고서 다른 사람은 활동을 하는데 왜 보고만 있냐며 시위 군중을 독려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원곡면사무소에 가서 시위대를 지휘하여 만세를 부르고, 사무소에 투석을 하였다. 그리고 실내에서 서류, 기물을 끄집어내어 방화를 하였고, 사무소 및 숙직실도 불태우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은 치안 방해와 폭행 등의이유로 검거하려고 하였으나 붙잡히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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