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圭夏
圭夏1879. 9. 2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화천군 상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879년 9월 24일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봉오리(峰吾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서면 다목리(多木里)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상서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상서면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한 이창선(李昌善)은 봉오리 구장(區長)으로 거사 하루 전 마을회의에서 사람들을 모았다. 3월 27일 뽕나무 묘목 관계로 회의를 가진 이창선은 박용구(朴容九)·김광필(金光弼)·심경지(沈敬之) 등에게 만세운동을 제의하였고, 이들이 동의하면서 구체적인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주도자들은 다음날 화천읍(華川邑)에서 장이 서는 것을 이용하여 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봉오리·다목리·파포리(巴浦里) 지역의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다목리는 박용구·김광필 등이 맡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 계획을 알렸는데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동참을 약속하였다. 당시 서당교사였는데 마을을 돌면서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며 동참을 권유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3월 28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약속 장소인 봉오리와 파포리 사이에 있는 산기슭으로 향하였다. 그곳에는 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참여한 마을 주민 3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창선·박용구 등 주도자들은 미리 제작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이끌었으며, 주민들은 몽둥이와 낫과 괭이 등을 들고 뒤따랐다. 시위대는 봉오리를 지나 파포리 강을 건너 상서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인근 지역 주민들도 시위에 동참하면서 상서면사무소에 이르렀을 때 군중의 수는 1,000여 명을 헤아렸다.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에워싸고 ‘독립만세’를 연호하였으며 면장과 서기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면장 정종하(鄭鍾夏)와 서기들은 시위대의 권유를 거부하였고, 이에 시위대는 이들을 끌어내고 면사무소를 돌과 몽둥이 등으로 부수었다. 이후 시위대는 면장과 서기 3명을 앞세우고 장터가 있는 읍내로 행진하였다. 논미리(論味里)·신풍리(新豊里)·신대리(新大里)를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군중들이 참여하면서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읍내로 향하였다. 또한 헌병 보조원과 일본인 도로공사 기수(技手)도 붙잡아 시위대에 동참시켰다. 정오 무렵 신풍리 앞 주막거리에 이른 시위대는 점심을 먹기 위하여 도시락을 펼쳤다. 이때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본은 화천분견소 헌병과 춘천(春川) 수비대를 급파하여 시위대 앞을 가로막고 총격을 가하였다. 군경의 총격에 4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총탄에 부상을 입었다. 주도자 등도 붙잡히고 군중들도 해산하면서 만세운동은 읍내를 바로 앞에 두고 끝이 나게 되었다. 붙잡힌 이후 1919년 7월 5일 경성지방법원 예심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정식 공판에 부쳐졌다. 같은 해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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