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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圭哲

圭哲

1900. 2. 4 ~ 1959.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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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圭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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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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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2월 4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의 경주 이씨 집성촌에서 이선영(李善榮)의 아들로 태어났다.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한 이찬영(李燦榮)은 숙부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서당에서 교육을 받은 후 생업에 종사하였으며, 판결문에는 직업이 농업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의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된 이후 안성 각 지역에서도 당시 일본인들의 농토와 상권 침탈, 조선총독부의 증세와 농번기 부역 동원으로 인해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으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원곡면과 양성면 일대 주민들 역시 3월 28일부터 마을 단위로 모여 뒷산 등지에서 만세를 외치고 자진 해산하는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원곡면 주민들은 이덕순(李德順)·최은식(崔殷植)·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을 중심으로 3월 31일 만세운동을 마친 후 이튿날 재궐기하여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 일제의 통치기관을 공격하고, 안성에서 일본인들을 쫓아내고자 하였다. 이들은 원곡면 일대를 순회하며 면민들에게 만세운동 계획을 전달하였다. 이때 외가천리(外加川里)에 거주하는 이희룡(李熙龍)에게 계획을 듣고 취지에 공감하여 4월 1일의 만세시위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4월 1일 오후 8시 이인군(李仁君) 등과 함께 집결지로 약속된 외가천리의 면사무소 앞에 도착하였다. 이덕순과 이근수(李根洙) 등이 인솔하는 1,0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횃불을 들고 만세를 외치며 양성면 동항리(東恒里)의 경찰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도착한 이후 시위대는 주재소를 포위하고 일제 경찰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하라고 권유하였다. 일제 경찰들이 이를 거부하고 도주하자 시위대는 주재소의 외벽과 창문에 돌을 던져 파괴하였다. 이때 주재소의 문을 발로 차서 부수고 내부로 돌입하였으며, 내부의 집기를 파괴하였다. 이후 최은식 등 만세운동의 주도자들이 주재소 건물을 불태우자, 군중과 함께 양성우편소(陽城郵便所)로 가서 창문에 돌을 던져 깨뜨린 다음, 사무실로 들어가 서류를 반출하여 불에 넣고 책상을 내던져 부수었다. 이후 만세운동 대열이 둘로 나뉠 때 일본인 잡화상점 쪽으로 가서 진열장을 부수고 물건들을 바깥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군중들과 함께 이튿날인 4월 2일 오전 4시까지 만세를 외쳤고, 원곡면사무소가 불에 탄 이후 귀가하였다. 이후 일제는 용산(龍山) 주둔 일본군 병력까지 동원해 같은 해 6월까지 두 달 동안 시위 참가자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주민을 검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은 야간에 마을을 습격해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가옥에 불을 지르는 등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하며 만세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연행하였다. 만세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붙잡혀서 형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체포와 조사과정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일제는 원곡면 및 양성면의 만세운동이 식민통치에 조직적이고 전면적으로 항거했다는 이유로 내란죄 성립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사건을 고등법원에 배당하였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이 관할 재판소로 다시 지정되었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의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치안을 혼란케 하고, 주재소와 우체국 건물을 부수는 데 참가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월 24일 그것을 취하함에 따라 형이 확정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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