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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正乭

正乭

1907. 12. 9 ~ 198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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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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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咸陽)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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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진주농업학교
  • · 동무사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907년 12월 9일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 지곡면(池谷面) 도촌리(島村里)에서 태어났다. 1923년경 경남 진주공립농업학교 내에 조직된 ‘동무사’라는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동무사는 진주지역 내의 진주고등보통학교·진주농업학교·진주사범학교에 재학 중인 청년학생들이 순수 문예활동을 위해 구성한 단체였다. 재학 중 1928년 7월 6일 오전 8시에 진주고보와 함께 연합 동맹휴학을 주도하는 한편, 「공학제도 배척」 등 다섯 가지의 요구 사항을 적은 진정서를 학교 측에 제출하였다. 이에 도청 당국으로부터 무기휴교 처분을 받은 학교 측은 참여 학생들에 대해 무기정학을 처분을 내렸다. 그 뒤 학교 측은 7월 14일 돌연 15명에 대해 퇴학자를 발표하고 일반 학생들에 대해서는 7월 22일까지 등교할 것을 명령하였다. 이때 7월 19일 밤 9시 30분경 진주농업학교 1학년 교실에 방화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퇴학생들의 소행으로 판단한 일제 경찰에 의해 정만기(鄭萬基)·홍문표(洪文杓)·조원희(趙元熙)·권경희(權景熙) 등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또한 체포 학생들의 집을 가택 수색하여 찾아낸 정만기의 일기장에서 동무사 활동을 발견하고 수사하였으나, 순수한 학생모임 단체로 판명되었다. 그러자 체포된 학생 전원과 함께 풀려났지만, 며칠 뒤 다시 ‘방화범’으로 체포되었다. 이 일로 1928년 9월 14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3년을 받고 부산형무소 진주지소에서 옥고를 겪고 1931년 2월 13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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