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世基
世基1923. 10. 23 ~ 1976. 1.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3)
관련 사건
- · 부산항일학생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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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3) 1923년 10월 23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양보면(良甫面) 우복리(愚伏里)에서 태어났다. 1937년 부산제2상업학교(현 부산 개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4학년이던 1940년 11월 21~22일 양일간에 걸쳐 부산과 마산의 중학교 학생들 간에 경기관총과 38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동군(東軍)과 서군(西軍)으로 나뉘어 모의 전투 훈련을 받았다. 이어 11월 23일에는 부산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慶南學徒戰力增强國防競技大會)에 참가하였다. 모의 전투 훈련을 지휘한 일본군 배속장교 겸 부산 병참기지사령관 노다이(乃台兼治) 대좌(大佐)가 심판장을 맡았다. 훈련 과정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교 간에 차별하여 감정이 고조된 상황이었는데, 경기 대회에서도 일본인 학교에 유리하게 편파 판정을 내렸다. 결국 일본인 학교인 부산중학교가 승리하자 한국인 학생 1천여 명은 일본 국기 하강식에 「아리랑」을 불렀고 경기가 폐회된 뒤에도 운동장에 남아 금지곡인 「황성옛터」·「도라지」·「양산도」 등의 노래를 불렀다. 그 뒤에는 운동장을 나와 ‘조선독립만세’, ‘일본 놈 죽여라’, ‘너희들은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1·2·3학년 학생들을 귀가시킨 뒤에 오후 8시경 400여 명의 선배, 동급생들과 함께 노다이의 관사로 몰려가 돌을 던져 유리창과 외등을 깨뜨렸다. 노다이 대좌는 관사를 빠져나간 뒤였다. 이때 출동한 일제 경찰과 헌병에 200여 명과 함께 붙잡혀 기소되었다. 이 사건을 일명 ‘노사이사건’으로 불렀다. 1941년 6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양보면과 하동군청의 공무원, 양보공민중학교 교사로 잠시 근무한 뒤에 1952년 양보면의원에 당선되어 4년간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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