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命羽
命羽1872. 1. 5 ~ 1921. 1.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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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0) 1872년 1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부포리(浮浦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명보(明甫)·성일(性一)이며, 호는 성재(誠齋)이다. 1885년 경북 봉화(奉化) 유곡(닭실마을) 안동권씨 권성녀(權姓女)과 혼인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후손으로 유학을 공부하였으며, 1894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진사가 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문을 닫고 칩거에 들어갔다. 1910년 끝내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만도(李晩燾)를 비롯한 척사유림들의 자정순국(自靖殉國) 소식이 듣고는 분노와 근심으로 병을 얻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부인 권성녀가 “상황(上皇)(고종)은 아직 무탈하시고, 양친이 살아계시는데 병에 시달려서야 될 일입니까”라며 만류하였다. 이에 아직 고종과 부모가 살아 계시니 때를 기다리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1912년 봄 가족을 이끌고 속리산 아래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마로면(馬老面) 갈평리(葛坪里)로 이주하였다.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며 세속을 떠나 은둔 자정(自靖)을 시작하였다. 1915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3년상을 마친 뒤, 다시 계룡산 아래 봉서리(凰棲里)로 옮겨 갔다. 1918년 11월 모친이 별세하고, 이어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사망하자 머리를 풀고 미음을 먹으며 상을 치렀다. 아침 저녁으로 고종이 있는 곳을 향해 망곡(望哭)하며 지내다가 고종의 상기(喪期)가 끝나는 날이 다가오자 자결하기로 결단하였다. 이를 지켜봐 왔던 부인 권성녀도 남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자결 하루 전인 1920년 1월 27일 저녁 부인과 함께 자식들을 물리고 유서를 썼다. 1월 28일 부인과 함께 새벽 독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자식들이 가서 보았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부부의 머리맡에는 약 사발이 놓여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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