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昌淳
昌淳1840. 3. 15 ~ 1910. 9. 1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진규 의병부대
- · 산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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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40년 3월 15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청하면(淸河面) 청계동(淸溪洞, 현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청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청안(淸安), 호는 삼성재(三省齋)이다. 1896년 김진규(金鎭奎) 의병부대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정용기(鄭鏞基)가 산남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병사와 군량 및 군기를 모집하여 지원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김진규는 1896년 고향인 경북 청하에서 창의하였다. 이때 김진규 대장 휘하 중군장(中軍將)에 올라 소모장 이창모(李昌模), 소모장 이도상(李燾相), 서기 이기철(李基轍)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하지만 얼마 후 고종(高宗)의 의병해산 조칙(詔勅)이 내려지자 의병부대를 해산하고 은신하였다. 1905년 일제의 을사조약(乙巳條約) 강제 체결을 계기로 이에 항거하는 의병항쟁이 다시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경북 영천(永川)에서는 1906년 4월 고종의 밀지를 받든 정환직(鄭煥直)·정용기 부자가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일으켰다. 이때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과 군기를 모집하여 후원하였다. 이러한 일이 발각되어 일본군에게 가택이 불태워지는 수난을 당하였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비보를 듣고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원수와 한 하늘을 이고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내용의 유시(遺詩) 한 수를 남기고 1910년 9월 12일 단식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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