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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正儀

正儀

1851. 8. 19 ~ 193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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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正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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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聞慶)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문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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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0) 1851년 (음)8월 19일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가은읍(加恩邑) 죽문리(竹門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별칭으로 이선달(李先達)이라고도 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에 항거하는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 충북 제천(堤川)에서 일어난 호좌 의병부대는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 등이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창의한 뒤 류인석(柳麟錫)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충북 제천에서 결성되었다. 이때 대장 유인석(柳麟錫)의 휘하에서 전군중군(前軍中軍)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의병부대는 1896년 2월 중부지방의 요충지인 충주성(忠州城)을 점령하여 기세를 떨치면서 여러 종류의 통문을 관리들에게 보내어 각성을 촉구하였다. 부대는 문경에서 일어난 이강년(李康秊)의진의 협조로 수안보(水安堡)와 가흥(佳興)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충주성을 내어주고 제천으로 물러났으나 추격하는 일본군에 의해 해산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제 침략이 점점 심해지자 1905년 8월 원용팔(元容八)이 강원도 원주 주천(酒泉)에서 원주의병을 일으켰다. 원용팔은 각종의 통문(通文)과 격문(檄文)을 발표하고 영월(寧越), 단양(丹陽)을 돌아 영춘(永春)으로 들어와 진용을 정비하였다. 이때 원용팔의진의 전군장(前軍將)에 임명되었다. 의병부대는 충북·강원지역에서 크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 해 9월 대장 원용팔이 원주진위대에게 잡히자 부대도 와해되었다. 1896년 문경 의병부대를 이끌던 이강년(李康秊)이 1907년 3월 충북 제천에서 재기하자 좌종사(坐從事)로 참여하였다. 부대의 진용은 장임록(將任錄)·참모부(參謀部)·종사부(從事部)·좌종사부(坐從事部) 4부로 편성되어 있었다. 좌종사로 참여하여 군비 등 경제적으로 의병활동을 지원하였는데, 좌종사부에 속한 구성원들의 신분은 대부분 지방 유생들이었고, 그 규모는 120여 명이나 되었다. 이강년 부대는 1907년 3월 이후 충북·강원·경북 북부지역을 넘나들면서 일본군과 항쟁을 펼쳤다. 그 해 9월 7일 문경읍을 장악하고 남북으로 추격하는 일본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치렀다. 그 중 조령(鳥嶺)전투, 갈평(葛坪)전투, 적성(赤城)전투 등이 주목된다. 이듬해 1908년 5월 이후에는 경북 봉화(奉化)지역에서 서벽(西碧)전투, 내성(乃城)전투, 재산(財産)전투 등을 치렀다. 1908년 7월 2일 청풍(淸風) 작성(鵲城)전투에서 이강년 의병장이 부상을 입고 잡히면서 부대도 해산되었다. 이강년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같은 해 10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사망하였다.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전개된 이강년 의병부대의 활동 중 좌종사로 활동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부대의 군자금 등을 지원하는 활동으로 의병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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