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鶴
相鶴187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박장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박장호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서석면(瑞石面) 검산리(儉山里) 출신이다. 1908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34세로 기록되어 있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7년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박양직(朴養直, 박장호(朴長浩))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원도의 의병들은 주로 충청·경북 지역에서 활동하던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박장호 의병부대 역시 1907년부터 충북 단양(丹陽)에서 활약하던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펼쳤다. 의병의 적극적 유격 활동에 맞서 일본군은 일진회 등을 동원하여 자위단(自衛團)을 꾸리고 지역별 면 단위를 기준으로 독립적인 단(團)을 조직하였다. 그들은 의병들의 유격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편제되어 있었다. 특히 강원 지역은 적은 행정단위 대비 매우 높은 비율로 자위단이 조직되었던 곳이었다. 1907년 9월 20일경 강원도 홍천(洪川)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산악지형을 활용하여 유격전을 전개하던 박장호 의병부대에 들어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낭천(狼川)·양구(楊口)·인제(麟蹄) 등에서 활동하였고, 강릉(江陵)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후퇴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홍천헌병분견소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한편 강원도 원주(原州) 출신으로 노문성(盧文成) 의병부대에 가입하고 강릉·횡성(橫城)·홍천·양구(楊口)·인제(麟蹄) 등의 지역에서 활동한 원도인(元道仁)과 함께 판결을 받은 것으로 보아, 두사람이 소속된 의병부대가 연합작전을 펼쳤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들은 체포 당시 단발총과 화승총, 화약, 의복 등의 물품을 압수당하였다. 이 일로 1908년 9월 19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 5년을 받았다. 이후 옥고를 겪다가, 1910년 9월 5일 칙령 제325호 대사령에 의거해 사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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