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鳳兆
鳳兆1885. 7. 29 ~ 1962. 4.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석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85년 7월 29일 경상북도 하양군(河陽郡) 중림면(中林面, 현 경산시(慶山市) 진량읍(珍良邑))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봉조(李鳳祚)를 사용하였다. 1907년 이석조 의병부대에 입진하여 경주(慶州)·청도(淸道)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의병항쟁이 일어났다. 이때 경북 안동(安東)에서는 유격장(遊擊將) 이석조(李石兆)를 중심으로 안동 의병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 당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강제 체결되는 등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의병항쟁은 의병전쟁으로 발전해 갔다. 이 무렵 이석조는 마중군(馬中軍)이란 이름으로 경북 청도 일대에서 의병을 이끌고 투쟁하였는데, 이때 이석조 의병부대에 투신하여 활약하였다. 1907년 (음)5월 말 동료 의병 김윤향(金允香)과 함께 청도군 정자동(亭子洞)에 사는 김윤달(金允達)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9월 20일 마중군의 지휘로 동료 수 명과 함께 총기를 가지고 경주군 후곡동(後谷洞) 이참봉(李參奉)의 집에 들어가 인근 야산으로 불러낸 뒤 군자금 400원을 징수하였다. 또 같은 해 (음)10월 16일 동료 의병들과 함께 무기를 가지고 경주군 후곡동 부근에 가서 동장 등 3명을 불러내 군자금 75원을 동민들로부터 거두도록 하여 징수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08년 9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 폭동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