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萬源
萬源1867. 6. 9 ~ 1944. 10.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유인석 의병부대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유인석 의병부대)
- · 후기의병(이강년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7년 6월 9일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 덕산면(德山面) 월악리(月岳里)에서 태어났다. 본관(本貫)은 진성(眞城), 호는 산재(汕齋)이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유인석(柳麟錫)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독전장(督戰將) 겸 유격장(遊擊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이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해산 군인들은 일제에 대한 저항을 도모하기 위해 탄환과 총을 배양산(培陽山) 모처에 묻어두었다. 같은 해 7월 30일 의병장 이강년(李康年)의 지시를 받고 권용일(權用佾)과 함께 일본군과 순사와 두 차례 마주칠 뻔한 위험을 무릅쓰면서 배양산에 은닉된 병기류를 무사히 부대로 수송하였다. 이 공적으로 도총독장(都總督將)에, 권용일은 우군(右軍) 선봉장(先鋒將)에 임명되었다. 1908년 (음)4월에는 일본군 영천수비대(榮川守備隊) 병력이 대구(大邱) 방면에서 접근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이강년의 지휘 하에 안동(安東) 서벽(西壁)의 산중에서 의병 300여 명과 함께 매복하였다가 적을 포위하고 20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이강년 의병장이 1908년 6월 4일 청풍 까치성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일본군에 체포될 때까지 충북 연풍(延豊)·충주(忠州)·청풍·단양(丹陽)과 경북 문경(聞慶)·풍기(豊基) 등 각지의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다가 1909년 (음)1월 15일 일제에 붙잡혀 2월 27일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종신금고형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청주감옥에서 옥고를 겪던 중 고종의 특사로 풀려나 귀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