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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得春

得春

188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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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得春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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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井邑)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정읍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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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영백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김영백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전라북도 정읍군(井邑郡) 읍내면(邑內面) 인무리(人毋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7세인 것으로 보아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20대 시절 정읍의 부자였던 김씨 성을 지닌 참봉(參奉)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였다. 김참봉은 정읍군의 유일한 재산가였다고 한다. 머슴 생활을 하던 중인 1909년 1월에 김영백(金永伯)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김영백은 전라남도 장성(長城) 북이면(北二面) 달성리(達城里) 사람인데 1907년 10월 장성에서 봉기하여 광주(光州)·고부(古阜)·정읍·태인(泰仁)·부안(扶安)·흥덕(興德)·고창(高敞)·순창(淳昌)의 고을들에서 유격전을 벌인 인물이다. 1908년 수차례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고 교전하였다. 김영백 의병부대가 1908년 정읍에서 활동하던 중 만났던 것으로 보인다. 부대에 합류한 이후 1909년 1월 말부터 4월까지 장성·흥덕·고부 등에서 전투를 이어갔다. 유격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물자가 긴급히 필요했고, 이에 정읍에서 김영백 의병부대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군수품과 생활 필수품을 모집하러 다녔다. 1909년 1월과 7월 사이 김영백 의병부대의 동지들과 함께 정읍군 내동리(內洞里), 흥덕군 해평리(海平里) 등에서 주민들에게 “우리는 의병”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군자금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그 해 7월에 자신이 일하던 김참봉 집으로 김영백의 무리를 이끌고 가 김참봉을 납치하고자 기도하였다. 김참봉의 가족들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활발히 군수품 모집을 하다가 1909년 8월 15일에 고부경찰서 경부 정인하(鄭寅夏) 등으로 꾸려진 8명의 의병수색대에 붙잡혔다. 경부 정인하 등은 9월까지 약 한달 동안 대대적인 의병 수색에 나섰고 김영백의 부대를 해체시켰다. 1909년 9월 6일에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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