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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七

東七

미상 ~ 1908.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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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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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함북 북청)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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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3) 출생 시기와 출신지는 객관적인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함경북도 북청(北靑) 지역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막료(幕僚)로서 1908년까지 의병활동을 수행하였다. 1907년 6월 헤이그특사 사건 이후 고종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압력을 받아 퇴위 당하였으며 7월 20일 순종에게 황위를 양위하였다. 이어 7월 24일 이완용(李完用)의 친일 내각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과 경찰권을 통감부에 위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을 일제와 체결하였다. 대한제국의 신식 군대인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대한 해산 조치가 8월 1일부터 강행되자,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은 자결로 저항의 뜻을 밝혔으며 이어 시위대 2개 대대의 무력 저항과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무장 봉기 등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적극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의병 항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1907년 말 또는 1908년 함남 북청에서 거의한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막료의 직책을 맡았다. 이후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수행하던 가운데 1908년 6월 27일 북청 장수(場水)에서 벌어진 북청경찰분서(北靑警察分署) 아오토(靑砥) 소대(小隊)와의 전투와 같은 날 화하동(樺下洞)에서 일어난 사가라(相良) 소대와의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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