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基昶
基昶1871. 7. 10 ~ 1908. 8.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기삼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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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71년 7월 10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금호리(金狐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제(麟蹄)이다. 1907년 7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이 일제의 압력으로 강제 퇴위당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시위대(侍衛隊)와 진위대(鎭衛隊)가 강제 해산되었다. 이에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가담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났다. 정미의병기에 전남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기삼연(奇參衍)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장성 출신의 기삼연은 1895년 을미사변 후에도 을미의병을 일으켰던 인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1907년 9월 전남 영광(靈光) 수록산(隨錄山) 석수암(石水庵)에서 의병 회맹을 주도하여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儀會盟所)의 대장에 추대되었다. 기삼연 의병부대에서 호군장(護軍將)에 임명되어 장성·영광·나주(羅州)·함평(咸平)·고창(高敞) 전남·전북 등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지속적인 전과를 올렸다. 의병장 기삼연이 1907년 12월 말 일본군에 붙잡혀 이듬해 1월 2일 총살당하였으나 호남 의병은 김태원(金泰元) 등을 중심으로 유격전을 지속해 나갔다. 불리한 전세 속에서도 항일 투쟁을 멈추지 않았으나 1908년 8월 25일 장성군 황룡면 탑정리(塔井里, 현 와우리)에서 벌어진 일본군 토벌대와의 전투에서 끝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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