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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奎相

奎相

188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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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奎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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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保寧)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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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오양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충청남도 보령군(保寧郡) 목충면(木忠面) 한수동(寒水洞, 현 보령시 주포면 일대) 출신이다. 1909년 작성된 일제 보고문서에 당시 나이가 27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3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부터 오양선 의병부대에 들어가 충남 홍주군(洪州郡, 현 홍성군) 등의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가속화 시킨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내정까지 장악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까지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한 애국지사들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국권 회복에 나섰다. 전국적인 의병활동은 1909년이 되면서 더욱 왕성하게 발전하면서 고조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오양선(吳良善)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오양선 의병장은 1908년 100여 명의 부하들을 인솔해 일본군을 공격하고,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주로 보령군·홍주군·결성군(結城郡, 현 홍성군)·청양군(靑陽郡) 등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4월 23일 오양선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동료 의병 14명과 함께 홍주군 송지곡면(松枝谷面) 금곡리(金谷里, 현 홍성군 결성면 금곡리)에서 군자금 및 군수품을 모집하다가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다. 그러다가 결성군(結城郡) 광천면(廣川面) 금반산(金盤山)으로 피신하였지만, 밀정의 보고를 받고 출동한 홍주경찰서 순사에게 윤경구(尹敬九)와 함께 붙잡혔다. 이때 동료 의병 성주경(成周京)은 일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1909년 5월 19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8일 징역 5년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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