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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敬五

敬五

188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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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敬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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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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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후기의병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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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두방면(斗坊面) 각화리(角化里, 현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 출신이다. 일제 측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6세로 1884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양상기(梁相基)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광주군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내정을 장악하고 조약 체결 이후 한국군대 해산까지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한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나섰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양상기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양상기는 진위대(鎭衛隊) 군인 출신으로 의병장 양진여(梁振汝)의 아들이었다. 1908년 5월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40여 명의 의병들을 인솔하여 전라남도 광주군·동복군(同福郡, 현 화순군 동복면)·담양군(潭陽郡)·장성군(長城郡)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일본군 처단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12월부터 양상기 의병장을 따라 광주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9년 3월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10년 5월 1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6일 고등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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