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팔룡
尹八龍1872. 2. 13 ~ 1943. 9.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후기의병(정용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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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1872년 2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북내면(北內面) 관동(冠洞, 현 지품면 삼화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직업은 농업이다. 1907년 9월부터 정용기(鄭鏞基)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4년 일제는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전쟁을 일으키는 한편, 강제로 한국과 한일의정서, 그리고 한일외국인고문용빙에 관한 협정서를 체결하여 한국의 군사권, 외교권, 재정권 등을 침탈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일제는 강제로 한국과 을사늑약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자주적인 외교권을 빼앗았다. 1907년에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켰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내정을 장악하였다. 조약 체결 이후에는 한국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심각한 국권 침탈행위에 분격한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은 재차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였다. 정용기는 경북 영천(永川)출신의 의병장으로서 아버지 정환직(鄭煥直) 또한 의병장이었다. 정용기가 1907년 9월 1일 사망하자 정환직이 직접 남은 의병부대를 수습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때 활동하였는데 같은 해 9월 3일 경상북도 청하군(淸河郡, 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 분견소를 습격하고 친일파 순검 박내호(朴來鎬)를 처단하고, 분견소를 불을 질러 소각하였다. 같은 달 16일 흥해군(興海郡, 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분파소 순사들의 숙소를 습격하고 일본인 순사와 친일파 순사 정영필(鄭永弼)을 처단하였다. 같은 해 10월 29일 재차 흥해군 분파소를 습격하고 분파소를 불을 질러 소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편취급소를 습격하여 소장 이치하라 위타로(市原爲太郞)를 비롯한 일본인 3명을 처단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군 및 친일파 처단, 그리고 공공기관 공격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도중 일본군에 붙잡혔다. 1908년 8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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