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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장

尹致章

1876. 6. 13 ~ 197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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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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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廣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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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후기의병(경기도 광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6년 6월 13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대왕면(大旺面) 금토리(金土里, 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윤재옥(尹在鋈)이라는 이름이 있다. 1907년 경기 지역에서 직접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일본군과 교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6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에 의해 고종은 강제 퇴위당하였다. 같은 해 7월 24일 제3차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대한제국은 행정권을 일제에 침탈당하였고, 내정의 감독을 일본인 통감이 담당하게 되었다. 나아가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당하였다. 이 조치에 항거하여 대한제국 군인들과 산악 지역의 산포수들은 각지에서 의병으로 분기하였다. 광주군 대왕면 금토리에 거주하면서, 1907년 (음)10월 의병 70여 명과 함께 의병장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1907년 (음)12월 광주군 묵동(墨洞, 현 광주시 태전동 부근)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1908년 (음)2월에 중군장(中軍長) 오사과(吳司果) 등과 더불어 광주군 언주면(彦州面) 신정동(新亭洞, 현 서울특별시 서초구 신원동)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일본군에 붙잡혀서 1909년 1월 2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3월 23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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