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섭
尹鍾燮1878 ~ 1908. 7.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후기의병(쌍산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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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 금능리(金綾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향원(嚮遠), 호는 지재(志齋)이다. 집안은 논이 70~80마지기가 될 정도로 부유했으며, 1907년 1월 양회일(梁會一)이 척왜(斥倭)와 역신(逆臣) 오적(五賊)을 응징하기 위해 창의격문(倡義檄文)을 널리 보내자 이에 호응하여 쌍산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쌍산 의병부대는 증동(甑洞, 현 화순군 이양면 증리)마을에 의소(義所)를 설치한 뒤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군량을 확보하거나 대장간에서 무기를 제작하였다. 또한 의병부대를 선봉(先鋒)-중군(中軍)-후군(後軍) 중심의 3군 체제로 편제하여 군사 훈련을 시행하는 등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전투 준비를 갖추어 갔다. 준비를 마친 쌍산 의병부대는 1907년 4월 21일 능주(綾州) 공략을 시작으로 화순 등을 돌면서 각 군에 소재되어 있던 군아(郡衙)와 주사청(主事廳), 우편소(郵便所), 경무서(警務署) 등 주로 관공서를 공격하였다. 그 과정에서 무기와 물품 등을 탈취하거나 공문서를 불태웠으며, 전신주를 파괴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일진회원 등과 같은 친일 세력을 처단하고 일본 상인 및 상가 등을 공격하는 등 항일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이어서 이들은 광주를 교두보로 삼아 상경할 목적으로 광주(光州)로 향하였다. 하지만 동복(同福, 현 화순군 동복면)에서 광주로 넘어가는 도마치(圖馬峙, 현 화순군 사평면 유마리)에서 추격해 오던 일본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희생자와 함께 양회일 등 많은 사람들이 붙잡혔다. 이때 양회일과 함께 붙잡혀서 투옥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고종의 특사로 풀려났으나, 쌍산의병부대를 이끌던 양회일이 의병부대를 재결성하자 이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머슴출신 안규홍(安圭洪)이 주도한 ‘안담살이의병’과 함께 보성(寶城)·강진(康津)·장흥(長興) 등지에서 항일투쟁 뿐 아니라 부패한 관리와 탐학한 부호에 대한 공격과 함께 친일세력이었던 일진회원들을 처벌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1909년 일제가 호남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자행한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라는 대규모 군사작전에 의해 양회일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피살되거나 붙잡혔다. 이때 양회일 등과 함께 붙잡혀서 장흥감옥에 투옥되었으나, 1908년 7월 단식 투쟁을 하던 중 혀를 깨물어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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