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允相
允相1891 ~ 1940. 12.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산타페지방회
- · 쿠바 카르데나스지방회
- · 흥사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6)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읍내에서 태어났다. 자료에 따르면 1891년생으로 추정된다. 본명은 이병세(李炳世)이다. 이인상(李仁相)의 형이다. 1905년 5월 11일 멕시코 살리나 크루즈(Salina Cruz)항구에 도착한 1,018명의 한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가족과 함께 이주하였다. 1909년 5월 멕시코 유카탄반도(有佳團道, Yucatan Peninsula)메리다(美利多, Merida)에 정착한 후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국민회(國民會) 메리다지방회 회원으로 삶을 열어갔다. 1918년 2월에는 이름을 ‘병세’에서 ‘윤상’으로 개명했으며, 1920년에는 산타페(Santa Fe)지역으로 옮겨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산타페지방회에 가입하여 시찰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멕시코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경제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쿠바가 멕시코보다 돈벌이가 용이하고 생활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1921년 2월 25일부터 3월 3일까지 메리다·부엘도·푸론데라 지방회원 193명이 쿠바 마나티항구(Puerto de Manati)에 도착하였다. 1923년 다시 카르데나스(Cardenas)지역으로 이동한 후 30여 명의 한인들과 카르데나스지방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선출되었다. 3월 8일에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설립인준 허가를 받았다. 1926년 8월 29일 카르데나스지방회 주도로 개최된 국치기념식에서 호근덕·이원식·김주일과 「우리의 장래」라는 연설을 하며, 쿠바 한인사회의 발전과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1927년에는 지방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에는 부회장으로 활동하였고, 1930년 3월 1일 카르데나스지방회가 주최한 3·1운동 기념식에서 허영보·김세원·김덕순 등과 연설하였다. 1923년 4월 진성국어학교(進成國語學校) 간사로 선임되어 운영 개선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이 학교는 한인 2세대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독립의식을 함양시킬 목적으로 이해 3월 설립되었다. 1931년에는 법무원, 1934년과 1936년에는 총무로 활동하면서 지방회 재정과 독립운동 자금 수합에 노력을 기울였다. 1938년에는 카르데나스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순국선현추도식, 국치기념식을 거행하였다. 9월에는 카르데나스 여자애국단 지부 설립에 관여하였다. 1940년 12월 30일 병환으로 사망하였다. 1917년 4월 1일부터 1940년대까지 국민의무금,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금 등 다양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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