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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

1912. 8. 25 ~ 1990.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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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이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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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미주방면

지도 위치

광역 지역 대표 지점

이 위치는 멕시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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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아버지 이원준이 1905년 4월 1,033명의 한인과 함께 멕시코(Mexico)로 노동이민하였다. 1912년 8월 25일 한인들이 집중 거주하던 멕시코 유카탄(Yucatan)주 메리다(Merida)에서 태어났다. 멕시코 이름은 Joaquim Lee이다. 1921년 2월부터 3월 사이 멕시코 푸론테라 (Frontera)와 프로그레소(Progreso) 등지에 거주하던 한인 274명이 궁핍한 생활을 탈피하기 위해 쿠바로 이주할 때, 부친을 따라 쿠바(Cubba)로 이주하여 카르데나스(Cardenas)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31년 카르데나스지방회(일명 칼데라지방회) 서기로 선임되었고, 3월 10일에는 임천택이 중심이 되어 청년토론회를 조직하자, 법무원으로 선정되었다. 10월에는 지방회에서 운영하는 야학교 임원으로 참여하여 한인 2·5세대들이 정체성과 독립심을 가질 수 있도록 힘썼다. 그후 쿠바 마탄사스(Matanzas)로 이주하여 마탄사스지방회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5월 7일 마탄사스지방회 청년학원에서 개최한 조선역사강연회에서 「실력양성에 대하여」라는 제목 독립운동 방략에 대해 연설하였다. 1933년 청년학원 회계원으로 선임되었고, 3·1운동 및 독립선언 14주년 기념식에서 「손의암 선생의 최후 결심」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동 지방회 평의원·총무·서기로 활동하였다. 1939년 마탄사스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3·1운동과 국치기념일 등의 행사를 주관하면서 한인들의 독립의식 함양에 앞장섰다. 1940년에는 구제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41년에는 다시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어 12월 10일 일본타도회를 개최하여 한인들의 반일의식과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1941년 12월 8일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선언하자, 한인들을 일본인과 분리 보호하고 외교활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조직된 재큐한족단에 마탄사스지방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1943년에도 마탄사스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창립 33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여 국민회를 중심으로 민족운동에 매진할 것을 천명하였다. 5월에는 재큐한족단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44년에는 마탄사스지방회 선전위원, 1945년에는 서기로 활동하였다. 1935년부터 1944년까지 독립금을 비롯한 광복군후원금, 국민부담금 등 약 35원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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