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源
明源1869 ~ 1952. 10.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멕시코지방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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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5)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주덕면(周德面) 제야리(堤也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3년 당시 65세인것으로 보아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5년 4월 멕시코 이주 한인 1,033명 중 한 사람으로, 5월 멕시코에 도착한 후 4년간의 부채노예 계약에 얽매여 노동하다가 1909년 5월 풀려났다. 같은 달 국민회(國民會) 멕시코 메리다지방회가 창립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8월 국민회 메리다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임되어 지방회 장정(章程) 작성에 참여하였다. 1910년 총무로 활동하였고, 1912년 말 차기년도 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13년부터 총무 김태식과 함께 멕시코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회원 모집과 경찰소를 설립하여 한인들의 규합과 독립운동 전개에 앞장섰다. ‘경찰소’는 지방회보다 작은 단위의 조직을 말한다. 1918년에는 데스까갈경찰소 경찰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20년 6월 산타페로 이주하여 지방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선출된 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의 인준을 받았다. 1920년 6월 김명순·하오성과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산타페 지방회원으로 선임되었다. 1921년 10월 베라크루스경찰소 경찰원으로 선정되었으며, 1922년 3·1절 경축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1927년에는 멕시코시티지방회(墨京地方會)를 재건을 주도하고 1928년도 회장으로 선출되어 1930년 학무원, 1932년부터 1935년까지는 대의원, 1938년 6월까지 감찰원으로 활동하였고, 1939년 6월에는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40년 베라크루스지방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중국에서 광복군이 창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후원금 모금에 앞장섰다. 1942년 8월 29일 국치기념일을 맞아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독립을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1912년부터 1945년까지 국민의무금, 국치기념금, 3·1운동기념금, 광복군 후원금, 독립금 등 135원에 달하는 금액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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