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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彦一

彦一

1888 ~ 192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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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彦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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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 · 대한북로독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7)

관련 사건

  • · 경신참변(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7) 자료에 따르면 1920년 사망 당시 33세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만주로 건너가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수신향(守信鄕) 구세동(救世洞)에 거주하였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담하여 독립활동에 투신하였으며, 대한국민회가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로 발전한 이후에도 계속하여 참여하였다. 대한국민회는 구춘선(具春先)·마진(馬晉) 등이 주도하여 북간도지역 재만한국인 기독교계열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가 1919년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맞이하여 임시정부의 헌법과 공화주의를 수용하면서 개칭한 단체이다. 이들은 임시정부 산하기관을 자청하면서 중앙기구 이외에 서·북부 등의 지역총회를 두고 그 산하에 재무부, 편집부, 통신부, 의사부, 경호부 등의 기관을 설치하였다. 이때 서부총회에서 제1차 경호부(警護部) 구성에 참여하여 경호부장(警護部長) 강대진 휘하에서 경호부원(警護部員)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5월 27일 대한국민회는 최진동(崔振東)이 지휘한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와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과 통합되어 대한북로독군부로 발전하였다. 이때 중앙부처인 군무국(軍務局)의 치중과장(輜重課長) 이상수(李尙洙) 배하의 치중과원(輜重課員)으로 역할을 전환하여 활동하였다. 한편, 홍범도가 지휘한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金佐鎭)이 지휘한 청산리 전투 등의 패배로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을 위해 1920년 10~11월에 걸쳐 재만한국인 3,000여 명을 학살한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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