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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時恒

時恒

1859 ~ 19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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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時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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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선천(宣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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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족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64세로, 185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경 선천군 대목산(大睦山)의 식림 허가를 주창한 4인 중 이름이 있어 선천군의 식산흥업에 관심이 있었던 유지로 추정된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남만주로 이주하고, 지린성(吉林省) 싱징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에 거주하였다. 기독교인으로서 선교사들과 상당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후 재만 한인의 자치 조직인 부민단(扶民團)에 가입하였고, 1919년 만세운동 이후로는 왕청문 지역을 중심으로 부민단이 발전한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부민단은 1912년 통화현(通化縣)에서 이상룡(李相龍)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단체로, 재만한인조직의 민정에 대한 관할능력 강화, 자치기구로서의 기능 증진을 바탕으로 학교 설립과 같은 민족교육, 군사 능력의 배양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또한 부민단은 민정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교포 간에 발생하는 사송(詞訟)과 분쟁을 중재·조절하여 교민사회의 신뢰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때 교포 간의 사송을 관할하는 직임으로서 왕청문 지역의 검사로 임명되었다. 왕청문 지역의 부민단장(扶民團長) 한진석(韓鎭鍚)·백가장(百家長) 이봉규(李鳳奎), 선교사 최성계(崔成桂)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면서 1919년 3월 18일에 싱징현 관내에 부민단원을 포함한 한인의 집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각 장소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도록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부민단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여 공화주의(共和主義)를 수용하고 한족회로 발전하면서 교육, 산업, 민정에 대한 제반활동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또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군무를 분리하고 민정 활동에 주력하면서도 일제 밀정과 순경에 대한 감시, 적발활동에도 힘썼다. 이때 한족회의 검독(檢督)으로 종래의 사송뿐만 아니라 일제에 대한 감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던 중 1920년 9월 24일 이봉규를 비롯한 11명의 지도자급 인사와 함께 일본군에 의해 서간도 산중으로 끌려가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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